내 인생 첫 운전 – 현대 포니2와 아버지
1984년, 내가 국민학교 6학년 때였다.
당시 부산 영도에 살던 나는 일요일만 되면 아버지에게 끌려 동네 목욕탕으로 가는 것이 주말 일과였다.
뜨거운 물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다가 아버지에게 잡혀 때를 박박 밀리던 그 고통은 지금 생각해도 끔찍하다.
정말 피부가 벗겨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 모든 고통이 끝난 뒤, 목욕탕을 나오면서 마시던 차가운 병 콜라 한 병.
그 맛 하나로 또 다음 주 일요일을 버텼던 것 같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도
목욕탕 → 콜라 → 바나나우유 → 삶은 계란
이 코스를 기억하는 분들이 꽤 있을 것이다.

뜬금없는 운전 교습
그날도 여느 때처럼 때를 밀고 목욕을 마친 후,
아버지는 집으로 가지 않고 청학동 앞 바닷가 매립지 쪽으로 차를 몰고 갔다.
그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공장도, 큰길도 없고
그냥 넓은 공터 같은 곳이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갑자기 말했다.
“운전 한번 해볼래?”
지금 생각하면 국민학교 6학년에게 운전을 시키다니
참으로 시대가 느슨하고 평화로운 시절이었다.
우리 집 자동차 – 현대 포니2
그때 우리 집 차는 현대 포니2였다.
지금처럼 집집마다 자동차가 있던 시절이 아니라
차 한 대 있으면 동네에서 꽤 사는 집 소리 듣던 시절이었다.
어디 놀러 갈 때면 항상 차를 뒤에 세워두고
가족들이 그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차가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라
가족의 자랑거리이자 재산이던 시절이었다.
아마 본가 사진첩 어딘가에
포니2 앞에서 찍은 가족사진이 아직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클러치였다
운전 교습이 시작되었다.
당연히 그 시절 차는 수동 미션이었다.
핸들을 돌리면 차가 방향을 바꾼다는 것,
엑셀을 밟으면 앞으로 간다는 것,
브레이크를 밟으면 선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문제는 처음 들어본 단어.
클러치
아버지가 설명했다.
“클러치 밟고 1단 넣고,
엑셀 조금 밟으면서 클러치 천천히 떼면 출발한다.”
말은 쉽다.
하지만 현실은…
키도 작고 다리도 짧은 국민학교 6학년에게
클러치 미트는 너무 어려운 기술이었다.
결과는 뻔했다.
덜컹
울컥
부르릉
시동 꺼짐
다시 시동
덜컹
울컥
시동 꺼짐
이걸 수십 번 반복했다.
나중에는 시동 걸 때마다 차가
“겔겔겔…” 하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그 소리를 들은 아버지는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됐다… 그만하자…”
그리고 아버지는 다시는 나에게 운전을 가르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서 알게 된 것
세월이 흐르고 내가 성인이 되고,
동생이나 아내에게 운전을 가르칠 일이 생겼다.
그때 깨달았다.
아버지가 얼마나 대단한 인내심으로 나를 가르쳤는지.
가족에게 운전을 가르치는 일은
비폭력의 상징 간디라 해도
주먹을 쥘 수도 있는 일이다.
특히 수동차 클러치 미트는…
정말 사람이 부처가 되어야 한다.
지금은 추억이 된 포니2와 아버지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도 몇 년이 지났다.
40년도 더 지난 기억이라
많은 일들이 흐릿해졌지만,
그 바닷가 공터에서
포니2 운전석에 앉아
덜컹거리며 시동을 꺼먹던 그 날의 기억만큼은
이상하리만큼 또렷하게 남아 있다.
아마 그날 나는 운전을 배운 게 아니라
아버지의 사랑과 인내를 배웠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내 인생의 운전은
면허를 딴 날이 아니라
1984년, 부산 영도 바닷가 매립지에서
현대 포니2 운전석에 앉던 그날부터 시작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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