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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반, 일제 빅4 슈퍼바이크 전쟁 – 마지막 불꽃의 시대

old-garage 2026. 4. 5. 23:59

2000년대 초반, 일제 빅4 슈퍼바이크 전쟁 – 마지막 불꽃의 시대

2000년이 되면서 밀레니엄 시대가 열렸지만, 개인적인 일상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하지만 당시를 함께 했던 바이크 마니아들이라면 모두 기억할 것이다.

2000년이 되자마자 일제 빅4가 동시에 미쳐버린 시기가 있었다.

지금처럼 원가절감과 판매량 중심의 사골우려먹기, 엔진 돌리기가 아니라,
각 메이커가 자존심을 걸고 기술력을 총동원했던 마지막 시대.

지금의 슈퍼바이크가 종합격투기라면,
그 시절은 각 무술의 개성이 살아있던 이종격투기 시대였다.

 

1세대 YZF R1

 

이 모든 전쟁의 시작은 야마하의 YZF-R1이었다.

 

1998년에 등장한 R1은 당시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혼다 CBR900RR, 스즈키 GSX-R750, 가와사키 ZX-7R을 한순간에 구형으로 만들어 버렸다.

  • 최대 배기량
  • 최대 출력
  • 가장 가벼운 중량
  • 공격적인 디자인
  • 합리적인 가격

전 세계 라이더들이 R1에 열광했다.

비유하자면,
90년대 후반까지 학급 일진 3명이 싸우던 교실에
조용히 있던 야마하가 갑자기 괴물이 되어 나타나 학급을 평정 후
학교 전체 짱이 된 상황이었다.

 

혼다의 반격 – CBR929RR

그러면 당시 일본을 넘어 전세계 바이크계의 태산북두를 자처하던 혼다는 가만 있었을까?

2000년이 되자마자 절치부심한 혼다는CBR900RR의 후계자라며 CBR929RR을 전격 출시한다.

 

목표인 야마하 YZF-R1을 살짝 웃도는 출력과 조금 더 가벼운 건조중량. 

전세계 라이더들은 기다렸다는듯이 혼다의 반격을 반겼지만, CBR900RR의 후계자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이 929는 CBR900RR의 피를 이어받지 않은 이른바 정통성 없는  양자 같은 모델이었고

얼마안가 나락으로 추락하게 된다.

평소 신경도 안쓰던 따가리 역할의 찐따인 야마하에게 짱의 자리를 뺏겼다는 조급함 때문이었을까..?

선대 CBR900RR의 위대한 유산을 던져버리고 곳곳에 R1을 따라잡기 위해 혼다답지 않게 급조하거나 모방한 흔적이 역력했다.

그결과...

이럴수가 천하의 혼다가 뼈를 깍는 심정으로 낳았다는 회심의 역작이...

완성도가 떨어진다.. 

정숙함으로 이름 높던 엔진은 흡사 가와사키 엔진처럼 '걸걸'대는 소음을 낸다.

차체 중량을 줄이기 위해 하부 프레임을 삭제하여 어퍼 프레임만 남기고선 거기다 무거운 엔진을 마운트 시킨다.

것도 모잘라서 리어 스윙암까지 엔진에 결속시켜 버렸다.

이게 무슨 의미냐하면, 타이타닉 같은 큰배 내부에 격벽이 없다는 것이다.

큰배가 어디에 부딪혀 빵꾸가 나더라도 배 내부의 격벽으로 막으면 바닷물이 배전체로 가득차는 걸 방지 할 수 있다는건데..

CBR929의 설계는 리어 타이어가 충격받음--> 같이 물려있는 엔진에 충격 전가-->같이 물려 있는 메인 프레임에 충격 전가

--> 안그래도 얄쌍하게 경량화된 메인 프레임은 자기 할일도 바쁜데 리어 타이어와 엔진의 민원까지 떠 맡음

--> 결과는 불안정한 주행성--> 이로 인한 슬립 혹은 전도--> 카울 좀 깨지고 말 정도의 상황에서도 차체와 엔진 이탈, 혹은

뒷바퀴 통째로 이탈--> 폐차 로 이르는 엽기적인 결과를 도출했고, 어떻게든 R1의 출력스펙보다 높아야 한다는 강박과 조급함은

혼다답지 않게 내구성을 버리고 실린더 블럭의 설계를 얇게 하는 방식을 채택했고 이 결과는 혼다엔진 답지않은 잡소리와

'유리 엔진'이란 악명이 말해주듯 최악의 내구성을 보여주게 된다.

 

가와사키 – ZX-9R의 숙성 전략

이렇게 혼다가 과잉 망상에 젖어 삽질을 할때 가와사키는 기존의 ZX-9R을 더욱 숙성시키는 방향을 선택한다.

 

전대 ZX-9R의 컨셉이었던 반체급 높은 차체 크기를 유지한채 곳곳에 경량화와 약간의 출력 상승을 통해 전대 모델의

정통성을 이어 더욱 숙성시키는 방향을 제시했지만..

이 말은 결국 정상을 목표로 하는 혁신 보단 안정적인 2인자의 자리 콩라인을 목표로 해 쉬운 길을 가겠다는 것.

별다른 임팩트를 시장에 던져 주진 못한다.

 

그러던 2001년.  잠자던 스즈키가 깨어났다.

GSXR750을 베이스로 한 GSXR1000으로 이 슈퍼스포츠 시장에 출사표를 던진 것이다.

2001년 – 스즈키 GSX-R1000 등장

압도적인 힘으로.. 찍어누른다.

 

혼다의 CBR929도, 가와사키의 ZX-9R도 심지어 챔피언 야마하 YZF-R1에게 미안하지만.. 비교가 미안스러울 정도의 충격과

파급이었다.

 

원래도 학급 일진중 말석에 있던 스즈키가 때를 기다리며 조용히 있던 어느날 갑자기 특공무술을 익힌 헬창이 되어서 나타나 힘차게

교실문을 열어 제친것이다.

 

알천앞에서 혼다, 야마하, 가와사키의 힘자랑은 그저 초딩들 재롱잔치에 불과할만큼의 임팩트였고,

실제 출시와 동시에 한국에 수입된 알천의 압도적인 파워를 체감하고 따라갈 엄두도 못내었던 다른 차량 오너들은 숙연해 질 수 밖에 없었다.

 

이 이후에도 혼다는 CBR954RR, 가와사키는 스윙암을 보강한 최종형 ZX-9R, 센터업 머플러와 확바뀐 혁신적 디자인으로 재무장한 04 R1등으로 대응했으나,

2003년 초반,

스즈키는 동급최강을 넘어 사상 최강이라는 칭호를 받게 되는 GSXR1000K3를 내놓아 도전자들이 다시한번 구석으로 찌그러져

있게 만들어 버렸다.

 

지금처럼 환경규제, 소음규제, 원가절감,사골 우려먹기 등이 없었던 일제 빅4의 각각의 개성과 도전정신,

기술력을 최우선으로 하던..일제 빅4의 ..

아마 다시는 오지 않을 마지막 불꽃을 태워내던 시절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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